천축국(天竺國)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하였으며, 법주사의 창건보다 1년이 앞서지만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신라 말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잠시 머물러 용바위 위에 서서 신라의
서울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였다는 설이 있음
대웅전 안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5종의 탱화가 봉안되어져있는데 이 중 화법이 정교한
후불탱화와 1877년 (고종 14)에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국가지정유산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동, 서삼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어져있고
충북 유형문화재인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은 마의태자를 추모하였던 신라의 공장(工匠) 후손이
염불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미륵불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이 마애불은 영험이 있어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