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원 - 훈민정음은 완성 8년전 신미대사가 이미 만들었다. |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
"세종대왕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 유학자인 |
성현의 저서인 『용재총화』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언문은 범어 자에 의해 |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그런데 세종대왕이 신미대사가 범어를 모방해 실제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
있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신임이 두터웠던 신미대사를 보호하기 위한 |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신미대사 한글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세종대왕의 왕사인 신미대사가 당대 최고의 |
대학자로 범어에 능통했고, 한글이 범어(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보다 8년 앞선 정통 3년(1435)에 한글과 한자로 된 |
『원각선종석보』라는 불교 고서가 신미대사에 의해 출간됐다는 주장이다. |
또한 당시는 억불승유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대왕에서 연산군 초까지 |
한글로 발간된 문헌의 85%가 모두 불교관련 서적들이고, 유교관련 서적은 약 5%도 |
되지 않는다. 『월인석보』, 『용비어천가』등이 그것이다. |
특히 월인석보의 첫머리에 세종대왕의 어지가 정확히 108자이며, 『월인석보』 제1권의 |
페이지 수가 정확히 108쪽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라, 한글창제를 주도한 사람은 |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복천암의 신미대사였기 때문이다. |
그런가 하면 훈민정음이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에 종성을 |
바로 28번과 33번을 친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
상징하는 숫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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