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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흠] 세종대왕과 신미대사의 비밀

철없는 신선 2019. 5. 10. 23:30
강상원 - 훈민정음은 완성 8년전 신미대사가 이미 만들었다.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세종대왕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 유학자인 
성현의 저서인 『용재총화』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언문은 범어 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신미대사가 범어를 모방해 실제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불교를 배척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오랫동안 지키고 신임이 두터웠던 신미대사를 보호하기 위한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신미대사 한글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세종대왕의 왕사인 신미대사가 당대 최고의 
대학자로 범어에 능통했고, 한글이 범어(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보다 8년 앞선 정통 3년(1435)에 한글과 한자로 된 
『원각선종석보』라는 불교 고서가 신미대사에 의해 출간됐다는 주장이다. 
또한 당시는 억불승유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대왕에서 연산군 초까지 
한글로 발간된 문헌의 85%가 모두 불교관련 서적들이고, 유교관련 서적은 약 5%도 
되지 않는다. 『월인석보』, 『용비어천가』등이 그것이다.
특히 월인석보의 첫머리에 세종대왕의 어지가 정확히 108자이며, 『월인석보』 제1권의
페이지 수가 정확히 108쪽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라, 한글창제를 주도한 사람은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복천암의 신미대사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훈민정음이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에 종성을
바로 28번과 33번을 친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