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 |
신라에 화엄 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 |
원효(617년생) 및 의상(625년생) 보다는 약 30년 전의 사람이다 |
아버지는 신라의 진골 출신인 김무림(金茂林)이다. |
신라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의 관직에 있었다. |
자장율사가 생존했던 시기는 신라가 삼국 통일의 과업을 성취하려는 결의를 |
굳히는 시기로서 자장율사가 담당한 역할은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컸다. |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던 자장율사의 아버지인 김무림은 불교에 귀의하여 |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이 되게 할 것을 축원했다. |
608년(진평왕 30)에서 614년(진평왕 36) 사이 어느 날 자장율사의 어머니가 |
별이 떨어져 품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가 탄생한 사월초파일에 |
자장율사를 낳았다고 한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서는 자장율사를 신라의 |
왕자라고 하여 그 가계가 진골 귀족 가운데서도 왕실과 친연성이 깊음을 |
시사하고 있으며, 불교적인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출가 동기 : |
1) 어버이를 여읜 뒤부터 세속의 번거로움을 싫어 하여 처자를 버리고 |
홀로 깊은산 조그만 집을 지어 가시덤불로 둘러막고 벗은 몸으로 그 속에 |
앉아 움직이기만 하면 곧 가시에 찔리도록 하였고, 끈으로 머리를 천장에 |
매달아 정신의 혼미함 을 물리쳤다. 그때 조정의 재상 자리가 비어 그를 |
기용하려 하였으나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므로, 왕은 취임하지 않으면 곧 |
목을 베라는 엄한 명을 내렸다. |
그는 칙명을 듣고, "내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고 |
백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吾寧一日持戒死 不願百年破戒而生)."고 하였다. |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출가를 허락하였다는 설이 있고 |
2) 어려서 살생을 좋아하여 매를 놓아 뀡을 잡았는데 그 꿩이 눈물을 흘리는 |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출가했다는 설도 있다. |
636년(선덕여왕 5) 왕명으로 당(唐)나라로 가서 청량산(淸凉山)에서 |
문수보살 앞에 기도하고 가사(袈裟)와 사리(舍利)를 받았다. |
640년(선덕여왕 9) 이때에 귀국했다는 설도 있고 뭔지 모르겠슴. |
643년(선덕여왕`12) 대장경 1부와 불구(佛具) 등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
분황사(芬皇寺)에 머무르면서 궁중에서 대승론(大乘論) 강론 |
황룡사(皇龍寺)에서 보살계본(菩薩戒本) 강론. |
645년(선덕여왕 14) : 황룡사 9층탑 건립. 호국불교, 삼국통일 염원 |
646년(선덕여왕 15) : 선덕여왕의 명에 의거 통도사 창건. |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우리나라 불사리 신앙의 출발점 |
귀국후 창건한 대표사찰은 통도사, 월정사, 마곡사 |
649년(진덕여왕 3) 중국의 제도를 따라 신라에서 처음으로 |
관복(官服)을 입게 하였으며, |
650년(진덕여왕 4) 원녕사(元寧寺) 증축 및 《화엄경》강론, 화엄사상 |
658년 :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석남원(지금의 卍정암사)에서 입적 |
ㅁ 창건한 사찰 :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평창 월정사, |
백덤사의 봉정암 ,공주 마곡사, 안성 칠장사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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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음백과, 여기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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