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고승 "원효대사" VS "의상대사" |
원효대사 ( 617~ 686 ) 평민출신 |
의상대사 ( 625~ 702 ) 귀족출신(?) |
1) 원효대사 元曉大師 |
신라가 3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할 무렵 진평왕 39년생이다 |
동생뻘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든중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은후 |
깨달음을 얻어서 발길을 돌렸으며, 후일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
즉 유학파인 의상대사는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모든 것이 되지만, 원효대사는 |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는 방대한 분량의 불교관계 저술을 남겼으며 |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사상가가 되는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
621년경 : 14~15세에 출가 |
650년(진덕여왕4년) : 1차 당나라 유학. 첩자로 오인하여 귀국 |
660년(진덕여왕4년) : 36세때 "의상"과 함께 2차로 당나라 유학감 |
661년(문무왕1년) : 뱃길로 당나라 유학 갔다는 설도 있음, 유학길 도중에 해골바가지 물로 깨닫고, 서민들을 위한 불법전파 및 저술활동 |
686년 : 70세 입적 |
[ 삼국유사 ]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유성이 품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고 낳을때는 |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는데, 다급하여 집근처 밤나무 아래에서 해산한 이름이라네… |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시에 의하면 원효는 의상(義湘)과 함께 고구려 고승으로 |
백제 땅 전주 고대산(孤大山)으로 옮겨간 보덕(普德)에게 열반경 및 유마경을 배웠다 |
당나라 유학길에 토굴에서 자면서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 다음날 아침에 보니깐 |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고 토하다가 깨닫고 유학을 포기 했다는데….. |
[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 |
" 한 생각이 일어나니 갖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갖가지 마음이 |
사라진다. 여래께서 이르시되,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만이 짓는 것이다." |
또한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나라에는 있고,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유학길을 포기했다함. |
원효가 하루는 거리에서 노래를 했는데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 "누가 자루 없는 |
도끼를 내게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을 것이라"고 노래했다. |
태종무열왕이 이 노래를 전해듣고 원효가 나라에 크게 쓰일 인재를 낳고자 함을 |
알고는 과부였던 둘째딸 요석공주 (瑤石公主)와 원효를 이어주었다. |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薛聰)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
왕실을 중심으로하는 귀족불교와 서민불교와의 괴리가 있었지만, 원효는 불법을 |
서민들 속으로 널리 일상화 시키는데 일생을 바쳤다. |
저서로 100여 종 240여 권(또는 85종 170여 권)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연구범위도 |
대.소승 ,경·율·논 등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현존하는 것은 19부 22권뿐이며 |
그중 중요한 것은 〈대승기신론소〉 2권, 〈대승기신론별기〉 1권, 〈이장의 二障義〉 1권, |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 3권, 〈법화경종요 法華經宗要〉 1권, 등등이다 |
의상대사가 주로 왕족들과 놀았다면, 원효는 서민들과 놀았으므로 사찰 건립 또한 |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아마도 서민들이 만들은 사찰이었기 때문에 원효가 |
창건했다는 사찰들은 규모가 작은 암자성격들이 많지만 경관은 빼어난곳이 많다 |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사찰은 경북봉화 청량사, 양산 홍룡사, 기장 장안사, 북한산 |
흥국사 및 태고사, 대둔산 태고사, 팔공산 오도암, 여수 항일암. 여기저기 원효암 등 |
2) 의상대사 義湘大師 |
[ 삼국유사 ]에 의하면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침공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해 |
서둘러 귀국하여 문부왕에게 알려 주기 위했다는 것이며 동해의 굴에서 관음보살을 |
친견하고 卍낙산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도 있지만, 『송고승전』에는 화엄대교(華嚴大敎)를 |
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
625년(진평왕47년) 경주에서 출생 |
645년(선덕여왕13년) : 20살 출가(황복사) 확실한 것은 아님 |
650년(진덕여왕4년) : 1차 당나라 유학 첩자로 오인하여 귀국 |
660년(진덕여왕4년) : 36세때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감 |
661년(문무왕1년) : 뱃길로 당나라 유학 갔다는 설도 있음. |
670년(문무왕10년) : 신라로 돌아옴 |
671년 : 속초 낙산사 관음성지 창건, "의상대사기념관"이 있음 |
672년 : 안동 봉정사 창건(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국보 15호) |
676년 : 화엄종의 본산인 영주 부석사 창건 (무량수전 국보 18호) |
화엄종의 사찰을 건립하여 부처님의 화엄경이 널이 보급 되도록했음. |
화엄사, 해인사, 범어사, 갑사등 많은 사찰을 건립함. |
원효에 비하여 매우 적은 저술만 있지만, 중구과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
702년 : 77세로 입적, 출생시기에 여러 학설이 많으므로 확실하지는 않음 |
화엄종(華嚴宗)은 천태종(天台宗)과 더불어 중국 불교 교학(敎學)의 쌍벽을 이루고
|
있는 종파이며, <화엄경(華嚴經)>을 주요 경전으로 삼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
화엄종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서로 끊임없이 연관되어 있으며, 그대로가 바로
|
불성(佛性)의 드러남이라고 하는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과 ‘성기설(性起說)’을
|
주장해 ‘법계종’이라고도 불린다
|
의상대사 이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 화엄 사상이 전래되어 있었지만, 화엄 사상이 |
크게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의상대사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의상대사가 |
남긴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
[법성게(法性偈)]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을 집약한 7언 30구의 게송이다
|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삼종세간 (三種世間)이
|
별개의 것이 아니면서도 따로 이해해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
물질의 세계 기세간(器世間)· |
인간의 세계 중생세간(衆生世間)]· |
지혜의 세계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
< 원문 > |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모습이 본래없고 |
모든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진여의 세계로다. |
無名無相絶一切 證知所知非餘境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
이름도 붙일수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것 끊겼으니 |
깨닭음의 지혜로만 알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
참된 성품은 참으로 깊고도 오묘하니 |
자기 성품을 지키거나 집착하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어지네. |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
하나속에 일체있고 여럿속에 하나 있어 |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로다. |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
한 작은 티끌속에 시방세계 머금었고 |
온갖 티끌 가운데도 또한 이와 다름없네. |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생각 찰나요,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른듯하면서도 모두가 현재의 이 마음에 함께 있어서 |
얽힌 듯 얽히지 않고 각각 뚜렷하게 이루어졌도다. |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
부처를 이루고자 처음 마음 낼때의 그 마음이 |
곧 바로 깨닭은 부처의 근본 마음이요, 생사와 열반이 언제나 함께하네. |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이사명연무분별 시불보현대인경) |
진리의 본체계(리)와 나타난 현상계가 한결같이 평등하여 분별할 길 없으니 |
수많은 부처님과 보현보살님의 경지로다. |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능인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부사의) |
부처님은 고요한 해인 삼매 가운데서 온갖 불가사의한 법을 나누시네. |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
중생을 이익되게하는 허공가득한 진리의 보배가 비처럼내리고 |
중생들은 저마다 그룻에 따라 얻는다네. |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시고행자환본제 파식망상필부득) |
그러므로 수행자가 이 도리를 얻어 본바탕에 이르려면 |
헛된 집착을 끓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네. |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무연선교착여의 귀가수분득자량) |
걸림이 없는 방법으로 여의주를 마음되로 잡아쥐어 |
진리의 고향에 돌아갈 자질과 능력대로 얻는도다. |
以多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이다라니무진보 장엄법계실보전) |
신묘한 다라니의 다함없는 보배로서 온 세상을 장엄하여 보배궁전 만드네. |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
마침네 실다운 진리의 세계인 중도에 자리에 앉았으니 |
옛부터 변함없는 내 본래의 자리 (본체) 그 이름 부처로다. 출처 참조 : 다음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학중앙연구원, 여기저기……. |
![]() |
한국의 승려들 참조 : 다음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학중앙연구원, 여기저기……. |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병2어] 가락국 쌍어문과의 관계는 (0) | 2020.03.31 |
---|---|
[卍고승들] 대각국사 의천, 천태종의 창시자 (0) | 2020.03.22 |
[卍고승들] 자장율사, 사리신앙의 시작 卍통도사를 창건 (0) | 2020.03.21 |
[김수로왕] 허황옥은 몇살까지 살았을까 ? (0) | 2020.03.12 |
[쌍어문] 보주태후 허황옥은 누구인가 (0) | 2020.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