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허황옥] 김수로왕비의 발자취를 찾아서.....

철없는 신선 2020. 4. 25. 23:30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의 발자취

대부분의 자료에는 인도 아야타국 공주가 김수로왕의 왕비였다라고

기재하고 있는데 왜 이름이 인도어가 아닌 한자로 되어져 있는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평생을 쌍어문에 관하여 연구하신 고고학자이신 김병모박사님의

자료에 의하면 비석에 새겨진 "보주태후"라고 기록된 보주라는 지명은

현재의 사천성 "안악"현 이었고 그곳의 우물(신정)에도

허황옥에 관한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상은 인도의 아야타 지역에 있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중국으로 이민 갔으며, 중국에서 소수민족의 서러움을  받다가 또 이주

이주하면서 상거래 루터를 따라서 꿈의 계시에 따라서 가야국의 수로왕과  혼례하기

위하여 현재 창원시 진해구 용원시장 부근의  방산도에 허황옥이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도착을 했으며, 타고온 돌로 만든배는 뒤집어져서 현재의 유주암이 되었다는데,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중국식 이름은 가지고 있었던 인도인의 핏줄을 가

사람이므로 대부분의 기록에는 그냥 인도 아요타국의 공주로 묘사된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에기의 근거는 <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도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알에서 깨어났다는 황당한 소리보다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으며 근거자료 및 유물들이 대변하고있다

또한 허황후가 도착후 혼례를 치루고 환궁하는길에 입고왔던 비단바지를

지금의 흥국사(과거 명월사 자리)부근에서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올렸다는데

수로왕이 허씨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교하여 산 이름을 명월산이라 하고

명월사(현 흥국사)를 짓게하여 새왕조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다고 하며

삼국유사에 158세까지 수로왕은 살았고 10남2녀를 두었다고 하며

아들 7명이 득도(참조*칠불사)했다고 하며 허황옥과 145년간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의 생존연령에 비하면 뭔가 이상한

부문도 있지만 일단 미스테리한 부문은 접어두고....

대략 공부는 이정도 했으니깐 잠시 허황후의 발자취를 찾아가 본다


▩  망산도 유주암 → 흥국사 → 명월산
















































































 

 

 

■ 김수로왕 (서기 42년~ 199년, 158세)   

AD 48년 중국 보주에서 온 허황옥(*보주태후)와

결혼 슬하에 10남 2녀

■ 허황옥 (서기 33년~ 189년, 157세)  

서기 48년 현재 청원시 진해구 망산도에

돌로 만든 배로 도착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