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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고승들] 자장율사, 사리신앙의 시작 卍통도사를 창건

철없는 신선 2020. 3. 21. 12:27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
신라에 화엄 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 
원효(617년생) 및 의상(625년생) 보다는 약 30년 전의 사람이다
아버지는 신라의 진골 출신인 김무림(金茂林)이다. 
신라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의 관직에 있었다.
자장율사가 생존했던 시기는 신라가 삼국 통일의 과업을 성취하려는 결의를
굳히는 시기로서 자장율사가 담당한 역할은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컸다.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던 자장율사의 아버지인 김무림은 불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이 되게 할 것을 축원했다.
608년(진평왕 30)에서 614년(진평왕 36) 사이 어느 날 자장율사의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가 탄생한 사월초파일에
자장율사를 낳았다고 한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서는 자장율사를 신라의 
왕자라고 하여 그 가계가 진골 귀족 가운데서도 왕실과 친연성이 깊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불교적인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가 동기 :
1) 어버이를 여읜 뒤부터 세속의 번거로움을 싫어 하여 처자를 버리고
홀로 깊은산 조그만 집을 지어 가시덤불로 둘러막고 벗은 몸으로 그 속에 
앉아 움직이기만 하면 곧 가시에 찔리도록 하였고, 끈으로 머리를 천장에
매달아 정신의 혼미함 을 물리쳤다. 그때 조정의 재상 자리가 비어 그를
기용하려 하였으나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므로, 왕은 취임하지 않으면 곧 
목을 베라는 엄한 명을 내렸다.
그는 칙명을 듣고, "내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고
백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吾寧一日持戒死 不願百年破戒而生)."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출가를 허락하였다는 설이 있고
2) 어려서 살생을 좋아하여 매를 놓아 뀡을 잡았는데 그 꿩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출가했다는 설도 있다.
636년(선덕여왕 5) 왕명으로 당(唐)나라로 가서 청량산(淸凉山)에서 
        문수보살 앞에 기도하고 가사(袈裟)와 사리(舍利)를 받았다. 
640년(선덕여왕 9) 이때에 귀국했다는 설도 있고 뭔지 모르겠슴.
643년(선덕여왕`12) 대장경 1부와 불구(佛具) 등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분황사(芬皇寺)에 머무르면서 궁중에서 대승론(大乘論) 강론 
        황룡사(皇龍寺)에서 보살계본(菩薩戒本) 강론.
645년(선덕여왕 14) : 황룡사 9층탑 건립. 호국불교, 삼국통일 염원
646년(선덕여왕 15) : 선덕여왕의 명에 의거 통도사 창건.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우리나라 불사리 신앙의 출발점
       귀국후 창건한 대표사찰은 통도사, 월정사, 마곡사
649년(진덕여왕 3) 중국의 제도를 따라 신라에서 처음으로 
       관복(官服)을 입게 하였으며, 
650년(진덕여왕 4) 원녕사(元寧寺) 증축 및 《화엄경》강론, 화엄사상

658년 :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석남원(지금의  卍정암사)에서 입적 

ㅁ 창건한 사찰 :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평창 월정사,

                     백덤사의 봉정암 ,공주 마곡사, 안성 칠장사 등 ….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음백과, 여기저기….